2014. 8. 15. 09:48

교황 박근혜 대통령의 허망한 활용법,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교황의 방문은 종교를 떠나는 상징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황의 방문은 최악의 상황에 처한 대한민국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었던 이들도 많았습니다. 정파를 떠나 교황의 등장은 종교를 넘어 세월호 특별법 등 산재한 문제들을 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전담마크 하는 박 대통령, 교황은 대통령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공항까지 나가 교황을 영접한 박 대통령은 그것이 마지막이어야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만나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은 교황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박 대통령의 전담마크를 당해야 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눈물 호소에도 교황의 뒤에서 웃기만 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공포스럽기만 했습니다. 

 

 

철저하게 세월호 참사를 왜곡하고 버린 대통령이 유가족들의 눈물과 그런 눈물을 위해 방한했다는 교황 뒤에서 아무런 표정 없이 웃는 모습은 경악스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그의 방문은 청와대를 위한 방문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사회적 약자와의 만남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5일의 방한 기간 동안 철저하게 천주교도로서의 일정을 수행합니다. 여러 차례 미사를 봉헌하고 성지 참배, 그리고 장애인·수도자와의 만남 행사 등 빡빡한 일정을 짜놓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세월호 유가족이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정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방신학을 받아들인 프란치스코 교황과 박근혜 대통령의 만남은 황당함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박 대통령과는 극과 극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신학은 '그리스토교는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된다. 가난한 사람이 그리스교의 핵심이다. 교회는 가난의 문제와 싸우고 가난한 사람과 손을 잡고 가난한 사람 편에 서야 한다는 세 가지가 바로 해방신학의 주요한 주제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만남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한민국의 교회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가난한 자를 잊으면 안 된다"는 말 속에는 오직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대한민국의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를 잊고 가난한자를 이용해 모든 것을 가진자들의 편에 선 교회는 더는 가난한자를 위한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는 철저하게 권력에 기생하고 강자를 위한 존재로 타락하며 그들은 더는 종교적인 선명함마저 포기한 상황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교인들은 그들을 위한 번영만을 위할 뿐 그들에게는 교회가 가지는 기본적인 가치를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세속적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교황의 발언에 대해 교회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 그게 궁금할 정도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다. 정의는 하나의 덕목이자 미덕으로써 자제와 관용의 소양을 의미하며,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이 불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환경에 대한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들, 취약한 사람들,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너무나 중요하다.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하는 것 뿐 아니라 인간적 문화적 삶도 향상되도록 도와줘야 한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돼 나가기를 바라며 오늘날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한국이 앞장서서 주도해주기를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연설에서 밝힌 내용은 무척이나 큰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교황이 밝힌 평화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자면 우린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고 밝힌 교황에게 대한민국에 평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의'라는 단어가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평화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권력을 위한 권력만 존재하는 대한민국에는 그 어떤 가치도 무의미하게 다가와 있을 뿐입니다. 교황의 발언에는 이 지독한 현실에 맞서서 싸우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가득했습니다.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 자연환경에 대한 파괴 등 대한민국 현실을 지배하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이에 맞서 정의를 실형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교황의 모습은 반가웠습니다.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각별히 배려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외치는 교황의 모습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돼 나가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이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세계화에도 뒤쳐지고 민주주의도 퇴색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청와대에서 솔직하게 표현한 교황의 모습은 그래서 반갑기만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도모하고 한반도의 통일시대 열어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한다"

 

교황의 이런 발언 뒤에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자신의 정치적인 발언만 할 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혁신이 성공할 수 있기를 기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너무 다른 교황과 대통령의 엇갈리는 주장만 가득했던 청와대 만찬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왔던 모습과 일치했습니다.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라는 것이 사회적 약자를 낭떠러지로 밀어 넣는 행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습니다. 일방주의만 내세운 채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과연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무엇인지 의아하기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특별법조차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크루즈 산업 육성법을 내세운 새누리당에게 혁신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근본적인 원인 해결은 등한시하면서 다시 크루즈 산업을 활성화하자고 나서는 그들에게 안전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크루즈에 카지노를 도입해야 한다는 새누리당과 현 정부는 그저 카지노 정국과 의료 민영화만을 외치고 있을 뿐입니다.

 

의료 민영화를 하고 전국 각지에 카지노를 설립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변화이고 혁신의 길이라며 교황에게 기도해 달라는 요구는 섬뜩하기만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는 일정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함께 하는 일정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위안부 할머니, 강정마을 사람들, 쌍용차 해고자,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들과 용산 참사 지역 등 교황이 만나고 방문하려는 곳과 박 대통령의 만남은 여전히 이질적이기만 합니다.

 

교황 방문에 때맞춰 이완구 원내대표는 세월호 희생자들 중에 정당과 연결된 자가 있고, 배상과 보상에만 관심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며 그들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13일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던 유가족들을 과잉 진압한 경찰들의 모습 속에도 세월호 참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교황 방문은 반가움보다는 감춰야 하는 것들이 많은 민낯 공개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교황마저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위한 홍보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