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3. 13:01

천재수학소녀논란 리플리증후군으로만 풀 수 없는 사회적 병리현상

미국에서 한인 소녀가 세계적인 명문 학교 두 곳에 동시 합격해 2년씩 공부를 하기로 했다는 기사다. 미국 내에서도 유명한 과학고를 다니고, 스탠퍼드와 하버드에서 천재 소녀를 데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기사는 많은 이들에게 큰 화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저 허망한 거짓말이었다.

 

천재소녀의 몰락, 리플리 증후군이 아니라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명문대학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교육비가 가정파탄의 이유가 되어가는 이 지독한 현실 속에서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자식들을 새로운 성공시대로 이끌기에 여념이 없다.

 

태어나는 순간 최고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아이들은 사육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자신들의 삶을 강요하고, 그런 삶만이 오직 유일한 삶이라고 주장하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하게 그 안에서 생존하는 것이 전부다. 가진 것이 많아서 모든 것을 다 취한다고 그들이 행복할 수는 없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원에 다닐 돈이 없어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라는 서울대 입학생들의 지역을 분석해보면 점점 강남구 출신들이 늘고 있다. 그들의 부모들 역시 소위 말하는 '사'자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는 이 하나만을 봐도 충분할 정도다.

 

사회적 불평등은 이렇게 더욱 지독한 수준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가고 있다. 이미 권력 자체가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돈으로 나눈 사회는 더욱 극단적으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99%의 절망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독함을 넘어 절망의 시대는 이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돈이 돈을 만들고 권력이 권력을 구축하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 없는 이들은 절망으로 미래가 없는 현실만 살게 한다. 그렇다고 현실이 행복하거나 즐거울 수도 없다. 미래가 없는 현실이 행복하다는 것은 절대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강제된 오늘만 살아야 하는 삶이 행복할 수는 없다.

 

오포시대를 넘어 칠포시대까지 오게 된 현실은 절망과 동급이다. 이런 상황에 한인교포 여학생의 대단한 성취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국 전체 고등학교에서도 25위권이라는 수식어에 스탠퍼드와 하버드, 여기에 주크버그까지 탐내는 천재 소녀라는 기사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기사에 나온 내용들만 보면 세상에 그런 천재는 없을 정도다. 이례를 찾아볼 수 없는 스텐퍼드와 하버드를 2년 동안 공부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관심은 크다고 했다. 세계적인 IT 기업의 CEO마저 그녀와 만나기를 원한다는 기사는 그 모든 것이 특별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다가진 소녀. 한국의 유명 게임업체 이사인 아버지를 둔 천재 소녀의 대단한 성취는 당연하게 국내에서도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단한 성취들은 자랑으로 다가오기까지 했다.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존재가 등장했다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천재소녀의 등장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천재소녀 등장에 행복해했던 기간은 짧기만 했다. 그녀가 미국과 국내에 큰 화제가 되면서 그녀에 대한 증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텐포드와 하버드 측은 그녀가 자신들의 학교에 합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녀의 동창들 역시 그녀가 허언증이 있다는 증언도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합격증과 이메일, 그리고 전화 통화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모든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도 보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겠다는 천재소녀의 아버지는 이내 사과를 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불찰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내 많은 이들은 리플리 증후군을 끄집어냈다. 미국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 발표한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소설 속 인물에서 유래했다. 허구를 현실로 믿은 채 살아가는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은 그저 소설 속에만 존재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 속 이런 수많은 리플리들은 많다. 현실이 지독해지면 할수록 이런 리플리들은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다가진 듯한 그 소녀는 왜 천재가 되었을까? 실제 그녀는 뛰어난 성취를 일궜던 그녀가 왜 이런 무책임한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가진 듯한 그녀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과중한 관심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잘살던 못살든 과중한 기대는 모두를 힘겨워하게 만들고 있다. 만족을 모르는 그들의 세계에서 최고가 아니라면 존재 가치는 없다는 심리가 지배하고 있다. 최고가 되지 않으면 스스로 존재 가치가 없다는 그들의 논리가 만든 결과는 참혹했다. 단순히 천재소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사회적 병리현상은 극과 극의 빈부 격차를 만들었고, 이런 현실 속에서 리플리 씨는 내가 될 수도 있다. 리플리 증후군만으로 그녀를 단죄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런 현상을 만든 것이 바로 잘못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비대해진 자본권력은 그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조금씩 하지만 이제는 너무 크게 붕괴시키게 만들고 있다. 사회적 시스템 붕괴는 개인의 가치관 시스템도 붕괴시켰고, 그런 연쇄적 붕괴는 다시 사회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며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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