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1. 11:10

강남역 살인사건은 묻지마 범죄가 아닌 사회가 낳은 표적 범죄다

강남역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난생 처음 보는 남자에게 20대 초반 여성은 허무하게 숨지고 말았다. 그녀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30대 남성은 여성이 자신을 혐오해서 저질렀다고 밝혔다.

 

남녀 갈등이 부른 화? 미친 사회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메가 시티인 서울. 그곳에서도 가장 핫한 공간인 강남역. 그곳의 상가 1층 한 달 월세는 7천만 원이 넘는다. 최근에는 1억이 넘는 돈을 요구한다고 한다. 전세도 아니고 월세가 그 정도로 요구될 정도로 강남역 근처는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 살인사건은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다. 30대 남성이 준비한 칼을 품고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남녀 공용 화장실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남성들이 여섯 명이나 화장실을 쓰는 동안 조용했던 이 남자는 태어나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피해자인 여성이 화장실에 들어서자 곧바로 살해했다.

 

자신을 평소에 혐오해왔던 여성에 대한 분노로 인해 죽였다는 범인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그가 과연 여성들에게는 혐오를 받아왔던 것일까? 아마도 그는 수많은 남성들에게 배척되었던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조현증 증세를 보여 약을 먹어왔다고 하는 이 피해자. 그마저도 최근에는 약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단순히 조현증이 만든 결과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는 왜 칼을 품은 채 여섯 명의 남성을 보면서도 범행을 하지 않았을까? 애써 참았던 그가 폭주하듯 칼을 휘두른 상대는 왜 여성이어야만 했을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왔기 때문에 저질렀다는 그의 발언은 그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면 그 명확한 대상을 향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 보는 여성을 향해 범죄를 저질렀다. 여성을 향한 잔인한 범죄는 이게 처음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영철 등 연쇄 살인마들은 모두 여성을 향해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그들 여기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하기는 했지만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묻지마 살인이 아니다. 살인마는 분명하게 성별을 가렸다는 점에서 이 살인은 '여성 혐오 범죄'라고 규정하는 것이 옳다. 이번 사건은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일 뿐이다.

 

여성이 잘못해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이해 될 수 없는 발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의 주장의 틀 속에는 언제나 여성이라는 존재는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는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확연하게 고개를 쳐들고 나왔다.

 

수구세력들로 지칭되는 존재들이 여성 혐오에 대한 발언들을 극단적으로 이끌어왔고,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 끌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이런 사회적 현상은 '젠더 전쟁'에 새로운 물꼬를 트기도 했다.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젠더 논쟁'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기 위한 토론이 아닌 서로를 비하하고 비난하는 것이 전부라는 점에서 답을 찾기 위한 논쟁이 아닌 서로를 소모시키는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회 분위기가 현재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경제는 장기 침체의 길을 걷고 있고, 좀처럼 좋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 속에서 사회는 변했다. 일하던 남성의 시대가 아닌 여성도 일하는 시대가 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남자들이 늘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강한 자에게 당당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화풀이할 대상이 절실한 그들은 약자를 찾았다. 사회적 약작에 대한 비상식적인 범죄가 늘어가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미 앞서 동일한 사회적 문제를 겪었던 일본에서는 이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잔혹 범죄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으니 말이다.

 

장애인과 여성, 노약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일부의 지독한 증오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사회적 함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함에도 정치권도 일부 권력에 귀속된 언론도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대결로 몰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여성이라는 단어를 뺀 단순한 '묻지마 범죄'로 본질을 흐리려는 노력을 가하는 모습도 보인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고 주장했던 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의 주장처럼 이번 '여성 혐오 범죄'를 단순한 '묻지마 범죄'로 묻어 희석시키려는 행위는 그래서 두렵게 다가온다.

 

이 범죄는 대상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 혐오 범죄'이지만 단순히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할 수 없는 사회적 병패가 낳은 결과다. 사회적 약자는 여성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보다 정상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는 마음껏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폭행을 일삼는다. 그래도 되는 것처럼 가해자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비하와 폭행, 장애인과 노약자에 대한 폭력이 일상처럼 여겨지는 험악한 사회에서 여성만이 그 혐오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집단적인 분노는 결국 '강자에게 약한' 한심한 존재들의 잘못된 증오가 낳은 결과일 것이다.

 

경제는 무너졌다. 그리고 현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지표는 없다. 대다수는 서민이자 노동자인 국민들의 삶을 피폐해지기만 한다. 그럼에도 재벌들은 엄청난 자산을 보유한 채 권력의 힘으로 자신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방패삼는다.

 

불합리한 사회적 문제는 그렇게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극단적인 빈부의 차는 이제 고착화되었다. 그런 사회적 변화는 돈이 돈을 낳고, 권력이 권력을 기르는 형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다음 세대가 성공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박탈감을 극대화시키는 현실 속에서 증오가 싹트는 것은 당연하다.

 

그 분노가 정당한 방식으로 표출되면 좋겠지만, 사회적 지형도를 만들어가는 정치와 언론 등은 철저하게 핵심을 감추기에만 급급하다. 재벌들을 향한 구애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기는 어렵다. 오직 대다수의 국민들을 그저 단순히 쓰고 버리는 노동자로 취급하는 현실 속에서 변화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병리현상은 제대로 풀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결국 다시 우리의 몫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젠더 전쟁'으로 비화되어서도 안 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문제가 폭발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성을 혐오한 한 남성의 잔인한 살인은 결국 그렇게 만들도록 요구하고 방아쇠를 당긴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위험 신호들이 깜빡였지만 정치권은 제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흐르는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부당함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으로 취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강남역 여성 증오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의 묵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될 수가 있다.

 

정치권과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만약 이번 사건마저 그저 정신병이 있는 환자의 묻지마 살인 정도로 취급해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깊은 늪으로 들어설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 범죄를 만든 것은 극단적인 빈부의 차다. 경제적 문제가 극심해질수록 이런 비겁한 증오 범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유엔 산하기구 범죄사무소의 연구를 보면 한국은 G20 국가 가운데 가장 여성들의 사망 비율이 높은 국가다. 한국 51%, 프랑스 34%, 영국 33%, 중국 30%, 인도 26% 순이다. 인도의 여성 범죄가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만 그들보다 두 배나 높은 여성 피해자 수치는 경악스럽다.

 

여성 10만 명 당 피해자 수 역시 G20 가운데 한국이 2.3명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1.9명, 인도 1.5명, 호주 1.2명, 중국 1.0명 순이다. 유엔 산하기구 범죄사무소의 연구 결과만 봐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이 얼마나 심각해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지독한 증오 범죄를 줄이는 방법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들을 만들어 가면 된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 단숨함은 그래서 더욱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사는 게 편해지면 남들을 증오하는 일도 줄어든다. 그런 증오보다는 풍족함에서 오는 편안함과 행복이 더 큰 삶의 재미가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증오 범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는 없다. 여기에 극단적인 여성 혐오를 주장하는 사회적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정치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만 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잡지 못하는 한 이런 증오범죄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는 곧 우리 모두를 증오하게 만들 수밖에는 없다. 누구도 그 증오스러운 사회에서는 안전해질 수가 없다.


                                                           내용이 마음에 드신다면 아래 공감을 눌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