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8. 10:53

박영선 김기춘 법률 미꾸자지 잡게 한 네티즌 수사대, 다시 시민 혁명이다

촛불 시민 혁명은 박근혜 탄핵 정국을 이끌었다. 만약 국민이 침묵했다면 거대한 범죄를 저지른 박근혜는 새누리당에 의해 비호를 받으며 대통령직을 그대로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더는 침묵하지 않던 국민은 광장에 나섰고, 그렇게 촛불을 들고 혁명을 이끌어냈다. 

시민혁명은 법률 미꾸라지 김기춘마저 무너트리게 만들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최순실은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결국 '김기춘 청문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날 재벌 총수들 청문회에서 삼성의 이재용이 청문회의 주인공이었듯 말이다. 삼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최순실과 내통했고 이를 통해 이재용의 삼성 지배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몸통이다. 



민정수석으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중 한 명으로 지목받고 있는 우병우는 도망치는데 급급했다. 문고리 삼인방 역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청문회 출석을 거부했다. 장모의 손을 잡고 도주한 우병우는 그렇게 대단한 척 했지만 야비하고 비굴한 범죄자 일 뿐임을 청문회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문을 연 고영태와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차은택, '체육 대통령'을 자처했던 김종 전 차관도 청문회에 출석했다. 그리고 고영태와 차은택을 통해 최순실이 실제 대한민국 권력 1위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시 증명되었다. 

'정윤회 십상시' 사건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김기춘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기에 급급했다. '김영한 비망록'에 적힌 자신의 발언들 역시 자신이 아니라 고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가미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드러난 증거마저 부정하기에 급급하기만 한 김기춘의 악랄함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김기춘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만 했다. 박근혜가 무슨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도 사적인 일이라 알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수요일 업무도 하지 않은 박근혜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박근혜의 사적 영역에도 근무실이 있다고 강변 했지만, 김기춘 스스로 사적 공간이라고 규정하며 논리의 모순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황당했다. 공과 사가 나뉘지 않고 엉망이 된 채 평일에도 근무를 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며 무엇을 했는지도 몰랐다는 김기춘의 발언들은 그렇게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지게 만들었다. 

"2014년 정도부터....정윤회 문건 사건 터지고 나서 저도 느낌이...동의한다"

"정윤회씨는 잘 모르지만 최씨와 대통령하고 거의 같은...급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영태는 정윤회 문건 사건 터지고 최순실이 권력 1위라는 사실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차은택 역시 정윤회는 모르지만 최순실과 박근혜가 같은 급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차은택은 자신이 추천한 인사가 실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박 대통령) 사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거래 관계도 드러났다. 고영태가 만든 가방과 옷들이 박근혜에게 건네졌는데, 금액은 최순실이 대신 지불했다는 증언을 했다. 45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박근혜 개인이 지불하거나, 청와대의 지출이 아닌 최순실 개인이 냈다는 것은 뇌물죄 적용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법률 미꾸라지라고 불리던 김기춘은 거의 100회에 가깝게 '모릅니다'를 청문회 내내 외쳤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은 나이와 이름, 때와 장소를 정확하게 명시하며 방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하면 무조건 '모른다'는 말로 법적인 문제를 피해가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기고만장 한 채 자신을 비호하기에만 바쁘던 김기춘도 무너졌다. 논란이 시작된 직후부터 최순실은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고, 통화한 사실도 없다며 선 긋기를 했던 것이 바로 김기춘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미 최순실과 정윤회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 자체를 모른다고 잡아 떼는 김기춘을 향해 고영태는 최순실이 김기춘이 고집이 세다는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했다. 그런 증언에도 무조건 모른 다던 김기춘이 "저도 나이가 들어서..."라는 말로 말을 바꾸게 만든 것은 바로 시민의 힘이었다. 

청문회를 보던 증권 갤러리 회원이 박영선 의원에게 보낸 문자와 동영상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2008년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가 했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그 현장에는 법률자문위원이었던 김기춘이 앞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박근혜가 최순실과 친하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최태민과 관련된 일 역시 박정희 정권과 함께 했던 중정 소속의 김기춘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저 모른다고 거짓말을 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김기춘은 이 영상이 청문회에서 공개되자 꼬리를 내리고 변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스스로 견고하다고 믿었던 논리는 모두 무너졌다. 검찰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특검을 앞두고 검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청문회에서 김기춘의 실체를 드러내게 한 국민의 힘은 그래서 위대하다. 광장의 정치를 통해 범죄자 박근혜를 탄핵으로 이끌었다. 

시민 혁명은 촛불로 광장을 밝혔고, 엉망이 된 대한민국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박근혜 탄핵'은 하루가 남았다. 그리고 그 탄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법률 미꾸라지'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던 김기춘도 꼼짝 할 수 없게 만든 시민의 힘은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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