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17. 10:05

그것이 알고 싶다 사냥꾼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잔인한 축소판 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마을로 들어 온 사냥꾼이 지적 장애를 가진 가족에 들어가 파괴하고 자인한 폭력과 재산까지 모두 갈취하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시선과 주폭이 주는 두려움, 외면과 침묵이 주는 폭력의 합리화는 우리 사회를 축소해 놓은 듯 처참했습니다. 여기에 공권력의 무기력한 원칙론은 불법 앞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지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주폭의 위험성이 두렵다

 

 

 

 

 

사냥꾼의 잔인함과 간교함이 만들어 놓은 사건은 참혹할 정도로 모두를 파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부부와 17살 딸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들에게 간사한 웃음을 무장한 채 들어서 주객이 전도되어 그 가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고 파괴해버린 이 황당한 사건은 경악을 넘어 허탈함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제작진들이 그 마을로 들어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보인 냉정함과 경계는 마치 우리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거대한 사건 속에 그들이 보인 모습을 단편적인 시각으로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작진이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단순하게 마을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거대한 사건 앞에 그들이 침묵하거나 일정 수준 외면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별반 큰 차이가 없는 평균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적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함께 공권력의 개입과 이를 통해 구축된 잘못이 본질을 넘어선 모든 것이 되어버린 상황에 더 이상의 개입은 자신들에게 피해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보수적인 가치는, 거대하고 어둡고 무겁게 마을 전체를 짓누르며 사냥꾼의 지속된 악행이 용이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잔인할 만큼 비참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을 전체를 감싸고도는 그 두려운 기운은 사냥꾼의 악행이 지배하고 있는 듯 지독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을과 동떨어진 산 밑에 홀로 남은 집에 지적 장애 가족들이 이사를 가고, 이어진 사냥꾼의 폭행으로 집주인인 남편이자 아버지인 지적장애인은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냥꾼은 17살 아이를 자신의 부인이라 칭하며 학교도 그만두게 만드는 악행을 이어갔습니다.

 

그 잔인한 폭력 앞에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부녀가 매일 밤 폭행을 피해 도움의 손길을 얻으려 헤매지만 다시 그 지독한 지옥과도 같은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쉽게도 그들이 가지는 두려움은 폭행이 만들어낸 잔인한 학습효과였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누구에게서도 도움의 손길도 편안함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 이 지적장애 가족들을 더욱 힘겹게 만들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초등학생 수준의 지적 수준을 가진 부모를 보살피고 지켜야 하는 17살 소녀에게 이 무섭고 두려운 상황은 홀로 이겨내거나 지킬 수 없는 지독함 그 자체였습니다. 지적 장애 부모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부드러움과 이성적인 모습에 잠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어린 소녀가 느끼는 순수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녀의 순수함마저 잔인한 폭력으로 가져가버린 이 잔인한 사냥꾼은 우리 사회의 폭압 자이자 권력의 실체와 같은 존재감이었습니다.

 

총 칼을 들고 마을로 들어서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그 잔인함은 모든 마을을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그 공포를 막아내고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임에도 서로가 객체화되어 공포의 근원에서 멀어지고 스스로 부정함으로서 나만은 안전할 수 있다는 다수의 이기심이 이 사건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적 장애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그들의 삶 자체도 자신들이 바라보는 시가 안에 가두려고만 했습니다. 지적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느꼈던 평생의 힘겨움은 그들이 공격을 당했을 때 더욱 아프고 잔인하게 다가왔다는 점에서 정상이 아니기에 쉽게 버릴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까지 가지게 했으니 말입니다. 

 

사건 조사를 하면서 피해자 부모가 지적 장애인임에도 전문가 상담을 통해 조사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하는 일상적인 조사로 마무리한 경찰의 한계 역시 사건을 더욱 크게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사지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가족들을 바라보면서도 나 몰라라 하며 원칙만 외치는 경찰은 누구를 위한 경찰이었을까요? 엄청난 공포에 빠져 있는 이 가족들에게 경찰이라는 조직은 어쩌면 또 다른 사냥꾼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던 가족들, 그리고 방송국의 취재마저 부정하고 격한 모습을 보이던 그들이 쏟아낸 진실은 경악스러웠습니다. 그 사냥꾼이 어떻게 자신들에게 접근했고, 무슨 방법으로 그들의 전 재산을 약탈했는지 밝히는 상황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가족을 장악하게 되자 아버지를 잦은 폭행으로 몰아내고, 어린 딸을 자신의 아내로 삼은 이 파렴치한은 지적 장애를 가진 어머니이지만 어린 딸을 홀로 두면 죽어도 찾을 수도 없겠다는 생각에 매일 이어지는 폭행에도 집을 떠나지 못한 그녀를 성폭행하는 악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술만 마시면 3시간 이상씩 쏟아지는 폭행과 성폭행의 그늘아래에서 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냥꾼이 가진 잔인한 무기들과 조폭 같은 성향은 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성폭행과 잦은 폭행을 한 사냥꾼을 조사한 경찰은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간단한 조사와 함께 풀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피의자 신분인 범인이 도망을 친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모습은 모두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게 했습니다.

 

사회적 지위(사단법인인 협회장)와 사냥꾼이라는 직업의 특성이 가진 잔인함이 한데 어우러져 사회적 약자들인 지적 장애인 부부와 17살 딸을 잔인하게 파괴한 이 파렴치한 범인은 총 칼을 들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죽음으로 이끌었던 독재자와 다름없어 보일 뿐입니다.

 

잘못에 대한 단죄가 없는 사회에서 지난 권력의 부도덕함이 마치 우리의 문화인 것처럼 인식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야만적인 권력과 폭력이 당연한 문화처럼 인식되어버린 문제가 이런 잔인한 사냥꾼을 만들어냈다고 보여 집니다. 친일파 청산도 독재자의 그늘도 거두지 못하고 여전히 그들의 지배아래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 사냥꾼 같은 존재가 이상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지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원활한 관리와 보호 시스템이 부재한 공권력은 유사 사건을 수없이 방치하고 조장할 수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검은 침묵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마을은 집단 이기심 혹은 두려움이 만들어낸 피해의식을 보여주는 듯 씁쓸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런 폭력의 권력 앞에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세력들(박정희와 전두환)이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지닌 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라는 점에서 이 지독한 싱크로율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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