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8. 10:40

안기부 X파일 유죄는 심각한 언론 탄압이다

삼성과 중앙일보가 대선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비밀 회동을 하던 내용을 담은 내용을 언론에 발표한 것이 유죄가 되는 세상은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삼성공화국이 하는 일은 성역이 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의 언론 탄압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바로미터가 될 듯합니다.

삼성의 부정은 부정도 아니란 말인가?




'안기부 X파일'로 불리는 이 사건의 핵심은 1997년 연말 대선을 앞두고 삼성의 2인자였던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만나 정치자금을 건넬 특정 후보와 검찰 조직의 이름과 금액을 논의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분명한 정치사범이고 엄벌에 처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은 '공익'을 앞세운 언론에 '도청'이라는 불법을 앞세워 통신보호법비밀위반 협의로 기소한 사건이 바로 '안기부 X파일' 사건입니다.  

전원합의체인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에게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을 확정하며 건넨 명분은 그들이 바라보는 언론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불법으로 감청·녹음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보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위법하다"
"국가기관의 불법녹음을 고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고 보기 어렵고, 보도 내용이 8년 전 일이라 공적 관심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 언론사 사주와 함께 특정 대선 후보와 검찰에게 정치 자금을 건네는 일이 문제가 안 된다는 발언은 경악스러울 따름입니다. 

보도가 정당할 수 있는 요건으로
△ 불법도청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보도가 이뤄졌을 경우
△ 불법도청 된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생명·재산 등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할 가능성이 클 경우
 

대법원이 문화방송의 방송 내용이 문제라고 지적한 부분은 '도청'이 불법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재벌과 언론이 만나 특정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건네는 일이 보도가 정당할 수 있는 요건 두 가지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인가요?

타락한 재벌과 수구언론이 머리를 맞대고 대선후보와 검찰에게 뇌물을 건네는 것이 왜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는 공정해야만 할 법이 철저하게 가진 자들과 권력 편에 서서 언론마저 탄압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일 뿐입니다. 

최시중이 방송통위원장이 되어 대한민국 언론을 70년대 독재 시절 수준으로 돌려놓고도 억울하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것과 다름없는 파렴치한 판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이용훈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8명과는 달리, 박시환을 위시한 다섯 명은 언론의 역할과 위법사실이 아니라는 의견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보도된 내용은 대기업이 대선과 검찰조직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법적인 행태로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으로 매우 중대한 공익과 관련돼 있다"
"8년 전 일이라도 재계와 정치권 등의 유착관계를 근절할 장치가 확립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나 정치자금 제공자로 거론된 대기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보도의 시의성이 인정된다"
"불법도청된 당사자들의 실명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대화 내용의 중대성, 공적 인물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보도에 의한 이익이 통신비밀의 유지로 얻어지는 이익보다 우월하다"

번복될 수도 없는 대법원의 판결에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언론탄압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이번 판결은 이후 철저하게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더욱 삼성 같은 거대 재벌이 벌이는 불법과 탈법, 위법 사안들은 결코 국내법으로 다스릴 수 없는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판결이기도 합니다.  

"(엑스파일 보도는) 대선과 관련해 충분한 사회적 가치와 공적 기능이 있는 사안을 다뤘다고 본다.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당연한 보도였다. 8년이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사안이더라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기능인데 이번 판결은 공익을 따지면서 공익에 눈을 감은 판결"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의 발언처럼 8년이라는 시안이 지나도 달라질 수 없는 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익을 공익이라 보지 않으려는 다수 대법관들의 판결은 우리나라 언론에 관한 치욕적인 판결로 기록될 것입니다.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며 공정해야 할 언론의 역할마저 족쇄를 채우는 법원의 판결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언론을 탄압하고 유린하는 MB 정권과 이런 정권에 빌붙어 언론 탄압을 당당하게 외치는 대법 전원합의체 '엑스파일'판결은 우리 사회가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길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판결은 우리를 슬프고 화나게 합니다. 탄압의 대상이 된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재정비를 하고 독재에 대항해야 할 명분과 이유는 더욱 명확해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