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7. 15:03

40년 된 박정희 유신독재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박근혜 후보 지원 논란으로 시끄럽다. 40년 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일인독재를 열었던 박정희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무리들의 섬뜩한 일들은 국민들을 경악스럽게 한다. 이 정권에 의해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MBC. 낙하산을 타고 내려선 김재철 사장은 이제 또 다른 권력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리고 전리품을 전달하기 위해 MBC의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팔아 박 후보 선거 유세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천황을 꿈꾸었던 박정희, 무덤에서 꺼낸 그들도 천황을 꿈꾸는가?

 

 

 

 

3선의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초헌법적 영구집권 체제인 유신 헌법을 발효했다. 자신이 영구적으로 대한민국의 왕으로 살겠다는 그의 선언은 곧 민주주의 사망선고와도 같은 이름이었다. 만약 독재가 박정희가 1979년 사망하지 않았다면 그의 자손 중 하나가 자신의 아버지 뒤를 이어 유신 독재를 이끌겠다고 나왔을 가능성도 높다. 마치 북한의 부자세습처럼 말이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 선거가 필요 없는 총통이 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박정희는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호소로 맞섰다. 그리고 고무줄과 막걸리에 이어 거대한 권력을 동원해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정말 국민들에게 자신을 찍어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일인 독재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법도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황당한 독재의 시작이 바로 1972년 10월 17일이었다. 그는 국회를 해산하면서 국민들을 팔아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는데 주력했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중대한 결심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그는 그럴 듯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국민을 들먹였다. 번영을 희구하고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은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독재가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그저 자신의 탐욕을 합리화하기 위한 주장일 뿐이었다.

 

친일파라 손가락질 받던 박정희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따온 '10월 유신'이라는 명칭으로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계엄령을 통해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오직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자신에게만 충성하도록 강요하는 지옥과도 같은 독재는 모든 이들을 숨죽이게 만들고 있었다.

 

박정희는 총 칼로 지배하며 형식적은 투표를 통해 자신의 영구 집권을 합리화했다. 그리고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전면 부정하는 유신헌법을 공포하며 입법과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하며 일당 독재는 시작되었다.

 

대통령 임기 6년에 중임 제한이 없는 영구집권 체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허수아비 기구를 만들어 대통령이 일괄 추천하는 국회의원을 통해 자신의 허수아비 정국을 이끈 박정희의 야망은 스스로 대한민국의 천황이 되는 것이었다.

 

사법적 심사대상도 될 수 없었던 긴급조치. 박정희는 이를 통해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언제든지 정지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권력을 쥔 독재자가 국민들의 어떤 반박도 용납할 수 없다며 초법적인 조치를 통해 자유롭게 국민들을 억압할 수 있는 제도는 박정희의 전부였다.

 

박정희의 정적인 김대중을 죽이기 위해 1973년 8월 일본에 체류 중인 그를 납치해 살해하려던 계획은 영화로도 개봉된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 등의 견제로 김대중을 살해하기 힘들어지자 자택 연금을 한 박정희는 같은 해 10월 서울대 문리대에서 벌어진 유신독재 체제 첫 시위는 국민들의 본격적인 저항의 시작이었다.

 

1974년 1월부터는 긴급조치를 발동해 언론인, 교수, 학생, 종교인, 문인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마치 일제 침략시대 일본놈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이들을 탄압하던 것처럼 말이다. 초법적인 지위를 얻은 독재자 박정희는 이를 통해 수많은 이들을 억압하고 죽이고, 재산을 강탈하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리를 유린한 범죄자일 뿐이었다.

 

그런 독재자 박정희가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일제를 찬양하고 독재를 합리화하는 뉴라이트가 대거 포진한 박근혜 대통령 후보 캠프의 모습은 과거 박정희의 망령이 그대로 되살아 나온 듯 섬뜩하기만 하다. 이한열 열사를 교과서에서 지우라고 강요하고, 일왕을 천황이라 찬양하도록 강요하는 이 황당한 조직들이 여권의 대통령 후보 캠프에 넓게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기만 하다.

 

박정희에 의해 잔인하게 사법 살인을 당했던 인혁당 사건에 대해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는 유족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망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급하게 프롬프터 사과를 했지만,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읽으며 사과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찾아내는 것은 사하라 사막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겨운 일이었다. 이런 오전 사과 오후 말춤 쇼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유신 독재체제에서 강압적으로 사유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챙긴 것이 바로 부일장학회다. 오직 박정희의 입만이 모든 것인 세상에 재산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없는 죄를 만들어 사법부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하루 만에 사형을 집행한 독재자에게 사유재산 강탈은 일도 아니니 말이다.

 

이렇게 얻은 개인 재산을 자신 부부의 이름을 따서 정수장학회라 짓고 사회사업을 한다는 미명아래 착복을 한 이 파렴치한 독재자의 그늘은 여전히 어둡고 진하게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강탈한 재산을 되팔아 이제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럽기만 하다.

 

친일을 찬양하는 무리들이 대거 포진한 박근혜 후보 캠프.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박 후보가 직접 언급했듯 독재자 박정희의 세상이다. 일그러진 아버지의 진심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정치를 한다는 박 후보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 40년 전 유신 독재라면 이는 결코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012년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40년 전 모든 권리를 강탈당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내일을 꿈꿀 것인가. 이제 모두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과거 유신독재로 돌아가든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지켜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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