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30. 11:14

김근태 당신은 아름다운 꼴찌보다는 단단한 민주화 거목 이셨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큰 별인 김근태 고문이 별세했습니다. 병상에서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는 진정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거목이셨습니다. 그가 지탱해진 든든한 뿌리가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파괴된 현 정권하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젠 고민이 된 김근태 고문의 명복을 빕니다.

탐욕과 비리와 배신이 판을 치는 정치판을 올곳게 지켜낸 거목 김근태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그는 모진 고문으로 온 몸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전기 고문 등으로 인해 그 후유증은 계속해서 그를 힘겹게 만들었고 결국 이렇게 일찍 가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모질기만 했던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 정권을 가지게 된 故 김근태 고문은 자신을 모질게 고문했던 고문 당사자들을 용서하며 악의 끈을 끊어버린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이를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상황에서 그 어떤 보복도 없이 아무런 대가없이 그들을 용서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드러납니다.

1971년 서울대 내란 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1974년에는 긴급 조치 9호를 어겨 수배를 당했고,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조직해 초대 의장이 된 그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1985년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서 23일 동안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해 말과 행동이 어눌해지는 파킨슨 병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투쟁은 이런 자신을 망가트리는 상황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988년 풀려난 그는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에서 활동하다 다시 지옥같은 곳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모진 고문을 받는 남편의 상황을 전세계 언론에 알린 부인 인재근씨에 의해 독재다의 만행은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부부는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하게 됩니다. 독일 함부르크자유재단은 故 김고문에게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 수평적 정권 교체를 내걸고 새천년민주당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정치 일선에 나선 김 고문은 1996년 15대 국회의원부터 내리 3선을 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삶도 모범적으로 해내왔습니다. 2002년 故 노무현 후보와의 경선에서 패배한 후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긴 그는 권력에 대한 욕심도 자신의 행복한 삶도 모두 포기한 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최전선에서 뛰었던 존재였습니다. 

부동산 원가 공개를 거부한 故 노무현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토론해 보자"며 자신이 믿고 지지했던 대통령이라도 잘못된 결정을 하면 가차 없이 비판을 했던 큰 어른이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유력한 대권 후보였음에도 "평화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대단한 용기를 가진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11월 '뇌정맥 혈전증'으로 입원하기 직전까지도 그는 현장을 직전 누빈 진정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3차 희망 버스를 타고 현장까지 갔었던 그는 이제 더 이상 현장에서 국민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외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야권 대통합을 주문했던 김고문은 그 열매를 받아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하늘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세계는 격동하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상징되는 잔혹한 유럽의 여름, 월가를 점령하자는 뉴욕의 가을, 그리고 월가점령에 대한 다른 도시들의 공감, 급기야 10월 15일 전 세계 곳곳에서 월가점령시위 동참......

월가점령시위가 확산되자 미국의 언론, 학계,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보수 쪽에서는 폭도라는 말까지 사용해가면 월가점령운동을 폄하하고 있고, 진보 쪽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알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역사의 순간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월가점령에 나선 사람들이 폭도로 여겨지지도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당장 붕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양 진영의 주장이 워낙 강력하고 방대하게 쏟아져 나오는 관계로 자칫 생각과 판단의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아졌다. 월가점령운동에 대한 양극단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차분히 묻고 냉철하게 대답해야 한다. 우선 미국인들은 왜 월가를 점령하자고 외치고 있을까.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왜 월가점령에 공감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1%를 향한 99%의 분노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1%인지 5%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처럼 전 세계가 공감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제패했었다는 증거다. 선진국과 후진국, 강대국과 약소국,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의 구분 없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세계적 대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월가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희생도, 반성도, 징벌도 없는 불공평함에 분노한 것이다. 금융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월가의 과도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티파티의 압력에 굴복해 길을 잃은 공화당과 의회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기도 하다.

드디어 미국인들이 기존 정치를 불신하고 스스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들은 티파티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발악에 맞서 어깨에 어깨를 걸고 있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냉혹해서 그들이 공화당을 장악한 티파티 정도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면 미국은 한 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감세가 중지되거나 약간 다시 오르거나 다음 선거에서 오바마가 재선되거나 일뿐이다. 이런 사실을 2008년 촛불집회를 했던 우리는 너무 잘 안다. 2008년의 촛불국민들은 2009년엔 조문행렬을 이었고 지금은 희망버스를 타야한다.

흔한 말로 정치권의 위기, 야당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일 뿐 비난이 승리는 아니다. 방법은 두 가지다. 미국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처럼 경선에 뛰어들어 직접 후보를 내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해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정치결사체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전자가 쉽고 확률도 높다. 비호감일지 모르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미국의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의 공통점은 적극적 참여와 정당과의 연계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2011년 10월 김근태  - 김근태 블로그에 남긴 마지막 글 '2012년을 점령하라' 


김 고문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마지막 글인 '2012년을 점령하라'에 모든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는 비록 현실 속 우리와 더 이상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민주주의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안내자 역할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격류에 휩쓸리고 협박과 회유에 흔들리는 순간에도 김근태 고문의 행동은 흔들림 없이 앞길을 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던 김근태 고문.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탐욕에도 권력 욕심도 없이 오직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던 그를 국민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민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