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0. 08:16

김정일 사망 소식으로 잠시 감춰진 중요한 사건들

북한의 절대 권력인 김정일이 지난 17일 사망했다고 합니다. 물론 발표는 19일 정오를 기해 방송이 되었고 아무런 상황인지를 못한 대한민국은 그저 북한 방송의 발표를 통해 북한의 절대자의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생일 날 터진 이 부고는 그에게는 환희에 찬 값진 선물처럼 다가왔을 듯합니다.

김정일 사망 소식 이 정권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냈다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에 중요 뉴스로 취급될 정도로 대단한 뉴스입니다. 철권 통치를 해왔던 독재자의 죽음은 당연하게도 관심이 갈 수밖에는 없겠지요. 더욱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일련의 행동들과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명명했던 북한의 최고 지도자의 죽음은 화제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이나 삼남인 김정은이 차기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조만간 김정일의 사망은 기정사실처럼 다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들은 해왔던 터입니다.

문제는 그의 죽음이 몰고 올 혼란이 김일성 죽음과는 달리 커다란 파고로 다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후계자 승계가 이뤄지는 기간은 상당히 오랜 기간 정교하게 이뤄진 반면 김정은에게 후계 구도가 넘어가는 과정은 급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래서 북한 내 혼란이 중첩되고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절대 권력의 충돌지점에 위치한 한반도. 패권 국가를 꿈꾸는 일본의 악마본색과 오일머니로 구축된 러시아의 부상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더욱 중심을 잡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상황은 총체적 난국으로 빠진 채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런 혼란은 더욱 힘겹게 보일 정도입니다.

철저한 친미와 친일로 이어진 외교는 당장 중국과의 외교 문제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북한과는 구축된 관계마저 파괴하며 긴장감을 부여하고 이를 통치의 도구로 이용함으로서 남북 간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무능과 혼란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은 바로 김정일 사망 소식을 북한이 방송을 통해 발표하기 전까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숙적이라 여기며 대치 정국을 이끌던 정권이 숙적의 동향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숙적의 수괴라 칭하던 김정일 위원장이 죽은 사실을 전혀 파악조차 하지 못한 정권의 무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일 파티를 하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접한 그들의 모습은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디도스 정국이 청와대와 경찰 조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사망 소식은 희소식이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디시 재기된 BBK 재판 역시 소식이 나오자마자 '김정일 사망'이라는 단어로 모두 덮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행복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 정권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엄청난 사건들이 그들이 그렇게 비난해왔던 김정일의 죽음으로 묻힐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김정일 사망으로 인해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는 행위들은 사라져야만 할 것입니다.

북풍을 통해 위기의 정국을 타파하겠다는 고리타분한 논리 역시 이번에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이 김정일 사망 후 곧바로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고 2틀이라는 시간을 둔 것은 김정은으로의 정권 이양이 상대적으로 잘 되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전망하듯 갑작스러운 북한 체제의 붕괴나 이로 인한 사회적 격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는 기회로 삼아야만 할 것입니다.

여전히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정세는 위태롭기만 합니다. 김일성 시대나 김정일 시대, 그리고 이제는 김정은 시대로 넘어간다고 그런 구도가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우리에게 우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느냐는 문제일 것입니다.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대치 국면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김정일의 사망이 위기에 몰린 이들에게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을 주기는 했지만 드러난 사실이 갑자기 거짓이거나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현 정권의 부도덕에 치를 떨고 있는 국민들이 김정일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처가에서 터져 나오는 끊임없는 비리 사건들과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둘러싼 엄청난 비자금의 규모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에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 청와대가 연루 되었을지 모른다는 상황까지 더해지며 이명박 퇴진 운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김정일 사망으로 잠시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결코 잊어서도 안 되고, 묻혀서도 안 되는 사건들이 명명백백 국민들 앞에 밝혀져야만 할 것입니다.


[한겨레와 경향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