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2. 09:04

대전 여고생 자살, 공교육 붕괴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

대전 여고생의 자살 사건이 다시 논란이 일고 있네요. 자살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자살이 무슨 큰 뉴스가 되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어린 여고생의 죽음에는 학교 시스템의 붕괴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따를 당하던 여고생이 담임에게 구원을 요청했음에도 거부당하고 절망 속에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다는 것은 분명 큰 문제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붕괴된 시스템, 공교육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교사는 학원 강사와는 다릅니다. 강사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학습만 시키면 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굳이 학생 지도에 나서지 않는 것은 공교육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공교육이 더 이상 그런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공교육의 의미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소양을 만들어내도록 해주는 역할일 것입니다. 현 정권들어 학생들을 줄 세우기 시키고 철저하게 점수로 학생들과 학교들을 제단해서 생긴 문제는, 이런 공교육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오직 명문대학교를 들어가는 것만이 학교 교육의 전부라고 이야기하는 그들로 인해 공교육은 학원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현 정권이 그렇게 내세우는 점수 높이는 교육이라는 그건 학원이 제격입니다. 그들의 교육관은 학원에서 기계적으로 주입하는 점수에 있을 뿐 공교육이 가지는 가치는 무의미했다는 점에서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저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은 교육의 가치이자 최종 목표라는 공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런 최종목표를 위해서라면 쓸데없는 학교는 모두 그만둬야 할 것입니다. 그 시간에 효과적인 학습을 시키는 학원에 나가는 것이 좋은 학교에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현 정권의 교육관을 이행해줄 수 있는 것은 학원밖에는 없습니다. 어쩌면 현 정권은 모든 공교육을 사설 학원처럼 변모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학생 개개인의 성향과 가치를 판단하기 보다는 철저하게 점수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현재의 공교육에는 그 어떤 가치도 부여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대전 여고생의 자살에는 학생들 간의 왕따가 다시 한 번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왕따 문제는 이미 사회문제로 고착화되었고 학창시절의 왕따 문화는 자연스럽게 사회 시스템에도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왕따 문제는 그저 단순히 몇몇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되돌아보고 고쳐야만 하는 고질병입니다.

왕따 문제를 사회적 화두를 삼아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왕따 공화국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왕따문화가 일상이 되어버린다면 개인의 가치는 상실하고 집단의 잘못된 가치들이 지배하게 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양산해 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왕따 문제보다 더욱 크게 다가왔던 것은 담임선생의 역할이었습니다. 자살한 학생이 자신의 왕따 사실을 담임선생에게 알리고 해법을 찾으려 했지만 담임은 그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심각한 왕따 문제를 단순히 친구들끼리의 문제로 국한시켜 자살한 학생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담임교사의 문제는 클 수밖에는 없습니다.

학생이 선생을 찾아 상담을 자청할 정도면 더 이상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해결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학생 문화가 선생과는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녀의 용기는 마지막이라는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담임마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왕따 당했던 학생은 더 이상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담임과의 면담은 중요했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찾아간 학생에게 감싸고 위로하고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그저 너희들끼리의 문제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이건 대단한 배신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담임과의 상담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더욱 심각한 왕따를 당했다는 점에서 이번 자살 사건에서 담임의 무능함은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공교육이 붕괴되면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걱정하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이번처럼 교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과연 교사로서 자격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공교육 현장이 아닌 학원이라면 당연히 학생들의 일에 간섭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올바른 인격을 갖춘 사회인이 되도록 돕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그들에게 이런 모습은 최악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왕따와 담임의 무관심이 빚어낸 자살 사건에 학교 측은 해당 학생들에게 가벼운 처벌만 내린 채 사건을 무마하려는 모습은 더욱 황당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행하고 있는 가해 학생들의 신상 공개 행위가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감정적인 대응은 또 다른 피해자만 양산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붕괴된 공교육 시스템에 있습니다. 왕따 당한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왕따 문화를 제어할지에 대한 매뉴얼도 없고 의지도 없는 교육 현장에는 유사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질 수밖에는 없는 토양이고 교사들의 교권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현재의 공교육은 이미 사망선고를 내려도 무방할 정도로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저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교사와 학원 선생보다 못한 실력을 가진 존재로만 여기는 학생 문화. 그런 문화 자체를 조장하고 만들어낸 정치인들과 교육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 삼아서라도 새롭게 변신을 꾀해야만 할 것입니다.

쉽게 근절될 수 없는 왕따 문화 등 학교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전문 상담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방법도 하나의 해법이 될 것입니다. 수업과 잔무만으로도 힘겨운 교사에게 학생 상담까지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 상담사 제도는 의미 있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천적인 방법과 함께 공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이뤄져야만 할 것입니다. 학원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한 이유가 무엇이고 공교육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에 대한 재인식을 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은 연이어 터질 수밖에는 없는 환경입니다.

교육 정책을 입안하고 진행하는 교과부의 전향적인 자세와 그저 학생들과 교사, 학교들을 점수로 줄 세우는 무식한 짓부터 걷어내는 것이 공교육 정상화를 향한 일보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