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9. 14:04

언론 총파업 100일, 신의 계시를 받은 아나운서와 계시도 무시했던 아나운서

MBC 총파업 100일을 맞이하며 두 아나운서들이 노조를 탈퇴하고 방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선택을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그들이 내세운 신의 계시는 당혹감을 넘어 그들이 보인 태도가 과연 무엇을 위함인지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서 황당하기만 합니다.

 

손석희의 푸른 수의와 맑은 웃음, 신의 계시도 거부한 그가 존경스럽다

 

 

 

 

 

MBC 총파업이 100일을 넘겼고 KBS도 65일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핵심인 방송이 이렇게 오랜 기간 파업을 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 정치권이나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국민들의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합니다.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KBS, 집권 세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방송문화진흥회가 주식의 70% 가지고 사장 임명을 하는 MBC, 대표적인 뉴스 채널인 YTN과 '국가기간통신사'인 YTN, 거대 교회 권력이 장악하고 있는 국민일보까지 언론사의 총파업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민영인 SBS를 제외하고는 모든 방송들이 파업 중이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하듯 '국가비상사태'와 다름없습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집권 여당은 좀처럼 방송 파업에 대한 그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장기 파업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사장으로 임명한 방송국에서 두 달이 넘게 파업을 하고 있는데도 관심이 없는 대통령이라면 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당의 절대 지존의 자리에 올라선 이가 실지배주로 있는 방문진 역시 수수방관으로 낙하산 사장들의 만행을 보고만 있을 뿐입니다.

 

파업이 100일을 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 정상화에 고민을 해야만 하는 MBC 임원들은 방문진을 통해 성과급을 왜 안주냐고 따지고 있는 상황이 현실입니다. 방송을 엉망으로 만들고 그렇게 무너진 방송을 쥐어 잡고 있으며 성과급 타령이나 하고 있는 그들이 과연 방송인으로서 적합한 존재들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무엇할까요?

 

임원들 다수가 이대로 대선까지 가도 상관없다는 말은 공공연하게 할 정도로 집권 세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방송사들은 파업을 통해 정상 방송이 되지 않는 현재를 대권에서 승리할 수 있는 호기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미 총선을 통해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은 그들에게는 이런 언론의 무기력함은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엄청난 비리가 연일 터지고 있음에도 방송에서는 그 비리에 대해 심도 깊은 지적도 나오지 않는 상황은 현재 방송이 철저하게 지배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직간접적으로 사장 임명에 나섰던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2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 협회 초청 토론회에 나서 방송 파업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방송사나) 어느 개별회사가 파업한다고 할 때마다 언급하게 되면 그것은 오히려 간섭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가 말한 개별회사 파업이 방송사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스럽습니다. 파업한다고 할 때마다 간섭할 일이 아니라며 방송 정상화와 언론 자유를 외치는 많은 언론인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통치권자의 발언은 경악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도 이야기가 되었지만 파업의 명분을 만든 것이 바로 이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직접 임명한 KBS와 그가 최종 임명장을 준 MBC나 YTN 등 방송사는 철저하게 자신의 손에 의해 임명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개별적인 회사의 파업에 대통령까지 나설 필요는 없겠지만 국가의 근간을 형성하는 방송사 파업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방송사를 일반 기업과 같은 논리로 바라본다는 것부터가 부적절하니 말입니다. 언론이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은 이미 이 정권을 통해 지독할 정도로 이어졌고 이런 문제는 결국 대대적인 총파업으로 이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최근에는 MBC와 KBS의 일요일 예능이 정상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동료와 선후배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파업을 하고 있는 중에도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방송에 대해 자화자찬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개인을 위한 파업이 아닌 언론 자유를 되찾아 정상 방송을 하자며 모든 것을 걸고 하는 파업 중임에도 사측의 거수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그들의 모습은 경악스럽기만 합니다.

 

'나가수2' 방송에 MBC 파업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방문진 이사장이 관객석에 앉아 즐기고 있는 모습은 현재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1, 2% 시청률을 기록하던 방송이 '나가수2'가 방송되며 9%대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에 사측은 행복해 했을 듯합니다. 그리고 '1박2일'도 파업 중이던 피디가 복귀하며 정상 방송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제 노조 파업을 흔들 호기를 맞이했다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개별 아나운서의 이탈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MBC는 파업 100일을 맞이하는 날 두 명의 아나운서가 노조에 탈퇴하고 방송사로 돌아갔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노조에 가입하고 탈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비난 받는 이유는 노조 탈퇴의 변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양승은 아나운서는 "주요 프로그램 앵커가 된다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를 들었고 최대현 아나운서의 경우 "권위에 복종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 그들이 노조 탈퇴의 변이었습니다. 모두 종교적인 이유로 탈퇴를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신은 김재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양 아나운서가 받은 신의 계시처럼 탈퇴와 함께 그녀는 주말 뉴스 앵커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엄감생심 노릴 수도 없는 자리를 신의 계시를 받고 얻었으니 그녀의 믿음은 앞으로 더욱 커질 일만 남았습니다. 아직 최 아나운서의 보직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권위에 복종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으니 언론의 자유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라도 시키면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니 그에게도 좋은 보직이 노조 탈퇴의 선물로 주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명분을 가진 파업이든 이 정도 장기 파업을 하게 되면 이런 식의 탈퇴자들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탈퇴하는 무리들보다 더욱 단단하게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파업 100일을 넘으며 MBC와 KBS 노조원들은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본격적인 파업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00일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밝히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설픈 신의 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신의 계시마저도 거부한 채 자신의 안위가 아닌 대한민국의 언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수많은 파업 노동자들은 그렇게 신의 계시를 무시한 채 언론 자유를 위해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직업을 가진 그들. 일반 회사원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그들이 그저 눈 한번 감고 언론을 장악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면 자신의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파업에 나서는 이유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개인의 안위가 아닌 '언론 자유'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을 평가절하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해주는 역할은 언론의 몫입니다. 하지만 지배 권력에 의해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방송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보다는 타락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파업은 정당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어떤 권력이 들어선다 해도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그들은 오직 언론의 자유만이 세상을 균형 있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이들입니다.

 

손석희 교수는 1992년 MBC 파업 당시 '파업 주동자'라는 이유로 구치소에 수감되기까지 했습니다. 파란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채 밝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건강한 언론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소신 있게 행동하는 손석희의 그 모습이 파업 100일을 넘긴 오늘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1992년 보다 더욱 무너진 방송의 현실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