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9. 12:05

지역구 포기하고 비례대표 1번 차지한 박근혜의 놀라운 유머 감각

대단한 존재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운 한나라당을 만든다며 비대위원장을 맡아 한나라당을 이끌던 박근혜가 지역구를 포기하며 공천 혁명에 앞장서겠다고 하더니 꼼수로 많은 이들은 감탄하게 만들고 있네요. 그 탁월한 유머 감각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추측도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함의 극치를 보이는 그의 행동이 곧 새누리당의 현재이자 미래이고 영원히 변할 수 없는 뿌리이겠지요.

한미 FTA와 4대강 옹호주의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공천 한심스럽다




이명박 정권이 몰락을 거듭하며 위기의식을 느낀 한나라당은 곧바로 박근혜 카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하는 수구언론들 역시 일시에 이명박을 팽시키고 박근혜를 자신들의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하며 밀어주기에 여념이 없다는 점에서 이미 여당의 정치 지형도는 박근혜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친이계가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며 이미 예상되었던 그들의 공천 시장은 박근혜가 그의 텃밭이었던 대구를 버리고 서울 중심지에서 야당 거물과 대결을 벌여 진정한 존재감을 보일 수 있을지는 많이 궁금할 수밖에는 없었지요. 정치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은 분명하지만 좀처럼 정치적인 역할이 무엇이고 정치인으로서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도 불가한 그가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하는지가 의문이었으니 말입니다.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로서 그 독재자의 그림자를 그대로 거두며 정치인으로서 살아 온 그녀는 결코 자신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박정희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오던 그는 그 유령을 되살리려는 이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정치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박근혜를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집단들은 모든 것은 박근혜를 통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유도하고 규정하고 있는 게 현재의 수고 언론의 자세이자 가치이기도 합니다.

박정희가 암살 당한지도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유령을 깨워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려는 이들로 인해 2012년 대한민국은 박정희 되살리기가 일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 유산이 여당의 핵이 되어 차기 대선 주자로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한계이자 문제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수구세력을 강화해 재집권을 이루려는 무리들로 인해 부산스러운 새누리당의 상징적인 변화의 핵은 역시 박근혜 비대위장입니다. 출마만 하면 당선이 보장되는 대구를 버렸다는 점에서 친이계들을 내치는 칼에 의미를 담던 그는 비례대표 1번을 받음으로서 온갖 비난의 중심에 설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안전한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 정치의 중심지에 속속 등장한 여당 의원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채 민망하게도 비례대표 1번을 받아든 모습은 참 황당하게 웃기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최대 사업이자 희대의 황당 사업으로 손꼽히는 4대강 사업의 책임자였던 전 국토해양부 제2차관인 김희국을 당선이 유력한 대구에 공천을 한 새누리당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이명박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처럼 이야기하던 박근혜 역시 그 본류에서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점을 명확하게 한 셈이니 말입니다. 친이계 의원들이 대거 탈락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의 문제를 거론하고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로 본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자신들이 순진한 생각들을 해왔는지 깨닫게 될 듯합니다.

친이계 의원들이 대거 탈락한 이유는 정책적인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도덕성이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신들 입장에서 충성심을 보일 수 있는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 그들에게는 중요했을 테니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통합민주당 역시 비난에서 자유롭기는 힘듭니다. 가장 왕성하게 4대강의 문제를 지적해왔던 김진애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점은 의외였습니다. 그녀가 그동안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모습은 국회의원 전체를 두고 봐도 월등했다는 점에서 통합민주당이 김진애 의원을 공천 탈락시킨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천 장사는 한미 FTA로 가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한미 FTA의 전도사였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서울 강남을에 공천한 것은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지역구는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었던 이영조가 공천을 받았던 자리라는 점에서 강남은 철저하게 이질적인 집단들만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인식을 고착화시키는 듯합니다.

철저하게 대한민국과 괴리된 채 자신들만의 세상을 사는 동네로 규정되고 한정된다는 점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서민들의 삶을 더욱 빈약하고 위협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한미 FTA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주범인 김종훈을 강남에 공천시켰다는 점에서도 새누리당이 서울 강남에는 서민이라는 존재는 없다고 확신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이런 김종훈과 함께 통합민주당이 김진표를 수원에 단수 공천한 것은 한미 FTA를 통과시킨 주범들이 모두 총선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합니다. 민주당의 X맨이라고 불리는 김진표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통합민주당은 과연 한미 FTA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개혁이 필요하고 막아야만 하는 법률 앞에서도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채 그저 상황논리를 앞세워 김진표 뒤에 숨었던 민주당의 작태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런 김진표가 '99%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것만큼 황당한 일은 무엇일까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지역구를 버렸다며 비례대표 1번을 차지하는 것과도 유사한 이런 부조리함은 결과적으로 투표에 대한 거부권만 늘어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번 총선과 대선은 향후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선거입니다. 서민들의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재벌 위주의 정책이 앞으로도 지속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선거에서 야당이 보이고 있는 색깔은 여전히 모호하기만 합니다. 박근혜 비대위장이 보여준 황당한 유머 감각만큼이나 야당이 보여주고 있는 허탈한 공천은 변화를 간절하게 기원하고 기대하는 많은 유권자들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그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겨레, 경향 만평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