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5. 11:20

고려대 대자보와 서울역 집회, 분노가 거세된 사회에 던진 화두

고려대에 붙은 대자보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도발적인 인사로 시작하는 이 대자보는 잠자고 있던 분노를 깨우는 글이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일이 아니면 스스로 안녕하다고 인식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과연 우리가 정말 안녕한지에 대한 자문을 해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안녕들하고 있는 것일까?

 

 

 

 

철도민영화 작업에 이어 이제는 의료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 적극적으로 나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국정원 문제는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은 댓글로 당선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세상에서 누구도 안녕할 수는 없었습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적습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쳐다보려 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결코 안녕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나라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어도 그저 자신에게 불합리함이 전해지지 않는 한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발이 썩어가고 있음에도 머리가 안전하다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은 언젠가 주변의 쓰러져가는 수많은 이들처럼 그렇게 쓰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일 뿐입니다.

 

우리는 왜 고려대 대자보에 이렇게 극적인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돌아봐야 할 듯합니다. 다른 시대와 달리 첨단화된 현대 사회에서 대학에 걸린 대자보가 이렇게 큰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해 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강력해진 언론 통제는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방송과 종이 언론까지 오직 절대자의 입만 바라보는 이 지독한 상황 속에서 제대로 문제를 들여다보기는 힘들어졌습니다. 왜 우리들이 그렇게 안녕한 듯 살아가게 되었는지는 바로 언론이 역할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그저 환각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힘은 그저 괴벨스의 책에서나 읽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면 언론이 왜 중요한지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괴물과 같은 권력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난 정부와 현 정부는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시녀를 자처한 언론으로 인해 현실 감각을 상실해가는 국민들에게 고려대 대자보는 대단한 위력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통제된 언론은 학교에 붙은 대자보를 통해 많은 이들을 자각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베르톨루치와 같은 언론 정책을 펼치는 권력으로 인해 국민들은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깨닫고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우리의 내일을 두렵게만 할 뿐입니다. 개개인은 뛰어난 존재들이지만 군중으로 모이면 바보가 되는 경우는 우린 국회를 통해 자주 봐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군중 심리는 언론을 통해 국민들 모두에게 전파되어왔고, 그런 노력들은 결국 무기력한 대한민국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수구언론은 고려대 대자보를 진보신당 당원의 부당한 선동 글 일 뿐이라고 폄하하기에 바쁩니다. 그런 글에 선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주장에 많은 이들이 비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주장 속에 현 문제의 심각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자보에 적혔던 철도 민영화와 밀양 송전탑 문제, 그리고 국가권력의 선거개입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렇게 미친듯이 대자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은 서울역을 가득 메웠습니다. 철도가 민영화되면 안 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그들에게도 고려대 대자보가 던진 화두 '안녕들하십니까'는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결코 안녕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그들에게 그들은 철도 민영화는 꼭 막아야만 하는 절대 가치였습니다.

 

대자보의 글에 철도 노조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글을 올렸고, 이는 다른 여러 대학은 답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만이 아니라 고교생들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올리며, 숨죽인 대중들이 사회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반갑습니다. 지독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 최면을 걸고 살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들이 대자보 하나로 자각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을 장악해 국민 우민화에 집중하려던 권력자들에게 대자보 하나는 강력한 각성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자보가 밀알이 되어 숨죽이고 있던 분노가 폭발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분노하지 않는 시대는 결국 몰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우리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지독할 정도로 민망함을 자극하는 이 인사는 결과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멀리했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거대 권력이 국민들을 억압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언제나 처럼 잘못된 권력에 맞서 분노하려 합니다.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권력에 대한 분노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일 뿐입니다. 그 어떤 권력도 막지 못한 시민의 힘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이번 대자보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노마저 거세된 사회에 던진 이 화두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합리함에 귀 기울여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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