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0. 13:04

사령카페 10대 잔혹 살인이 더욱 두렵게 다가오는 이유

사령카페 논란으로 인해 10대들은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잔혹함은 도심 한 복판 공원에서 목격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그 잔혹함이 거침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두렵게 다가옵니다. 신촌 살인 사건이라고 불리던 이 사건 속에는 그저 단순한 청소년들의 살인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고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듯합니다.

 

천박한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사회가 만든 필연적 사고

 

 

 

 

돈이 전부이고 돈만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세상. 그렇기에 대통령도 장사 잘하는 사람을 뽑아 놓은 세상. 그 세상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돈에 대한 물신주의만 팽배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돈을 제외한다면 그 무엇도 무의미하다는 사회적 가치는 곧 돈에 대한 집착을 불러왔고 결과는 자연스럽게 서서히 몰락해가는 사회로 이어졌습니다.

 

흉포한 범죄들이 쏟아지면 이 사회 권력자들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해법 같지 않은 해법을 내놓는 것으로 멈추는 상황에서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듯합니다. 신촌 살인 사건 역시 그런 무너진 사회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서 단순히 드러난 현상이 아닌 그 내면에 숨겨진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토요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가 건넨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그들이 이 사건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바로 사회적 병패가 이런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귀결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16살과 18살이 20살 대학생을 40번이 넘게 칼로 찔러 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살인을 했다는 사실은 끔찍할 정도였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왜 이런 참혹한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런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러울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초반 경찰 조사로 드러난 사건의 실체는 삼각관계가 부른 참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것은 '사령카페'라는 단어가 포함된 보다 복잡한 진실이 숨겨져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살해당한 피해자가 자신의 여자 친구를 그 이상한 카페에서 구해내기 위해 노력하다 잘못되어 살해되었다는 실체는 '사령'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왔습니다. 사령이란 특별한 주문을 통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혼령을 불러낸다는 오컬트적인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오컬트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비슷한 형식이 조금씩 변형된 모습으로 다가온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주문이라고 드러난 내용 역시 일본어를 공부하던 누군가가 일본 커뮤니티에서 올려 진 장난스러운 것들을 번역해 올린 것이 살을 더해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사령 가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가 명확했습니다.

 

여기에 온라인 게임의 세계관까지 하나가 되어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관은 그들만이 즐기고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함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게임과 왕따 문화가 하나가 되어 현실과 극렬한 한계로 다가온 그들의 왜곡된 세계관은 결국 살인이라는 극명한 결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세계관의 중심에는 소통의 부재와 현실 부적응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들이 SNS를 통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그렇게 자신들만의 결속을 다지는데 '사령'이라는 가치를 가져와 외피를 걸쳤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었습니다.

 

살인자가 된 범인들은 철저하게 또래 집단과 괴리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고 그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사령카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본질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고 자신들이 살인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원인이라 규정한 행위 역시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대단한 결속력을 가진 가해자들과 이를 파괴하려는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간절하게 원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고민과 아픔은 더욱 애절하고 힘겨움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격렬한 경쟁으로 내몰린 사회 속에서 낙오자는 당연한 결과물입니다. 문제는 그 낙오될 수밖에는 없는 크기를 줄이고 낙오된 이들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실패는 할 수 있고 소통이 서툴고 이로 인해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얼마나 현명한 방식으로 시스템화 된 구제 방안과 화합 방법들을 가동시키느냐 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는 이런 사회 시스템이 부실하기만 합니다. 오직 1%만을 위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가진 자들만을 위한 사회는 태어나면서 부터 무한한 경쟁으로 내몰고 화합과 포옹이라는 단어를 사어로 만들어버린 사회에서는 낙오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무차별적인 반격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낙오된 이들이 모든 것을 가진 이들에 대한 반항을 가지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희생자를 고른다는 점일 것입니다. 철저하게 망가지고 부패해져 버린 사회는 결국 이런 사고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사건은 이제 며칠만 지나면 모두에게 잊혀진 이야기로 남겨질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 철저하게 타인을 무너트리고 자신만이 살아야 하는 무한 경쟁에 빠진 채 누가 될지 모르는 희생자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사한 하지만 더욱 잔혹하고 정교해진 범죄들과 마주해야만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마저 철저하게 줄 세우기 교육에 집중하고 가진 자들만을 위한 사회가 곧 민주주의이고 그 모든 가치의 총아라고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일 것입니다. 1%가 아닌 99%와 모두 다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사회적 가치와 비전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다음 희생자는 바로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될 수밖에 없음에 10대들의 잔혹한 살인은 두렵게 다가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