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6. 11:55

생활고 일가족 자살 사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점이 두렵다

생활고를 비관하며 일가족이 자살을 했습니다. 60대 노인은 특별한 돈벌이가 없는 상황에서 퇴거 명령을 받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놓인 장례비용 100만원과 국밥이나 한 그릇 드시라는 글은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송파 세모녀 자살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지만 우리 사회는 변한 것은 없고, 유사한 사망 사고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회 안전망이 무너진 현실, 생활고 비관 자살은 폭주할 수밖에 없다

 

 

 

 

복지를 공산주의라 몰아붙이는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은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한 번 추락하면 더는 올라설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절망은 곧 죽음과 가까워지는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적 붕괴는 점점 심화되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렵기만 합니다.

 

오늘은 전혀 몰랐던 누군가가 생활고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가까운 누군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당황스럽고 무섭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도 별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생활고 비관한 일가족의 자살 사건으로 시끄럽기만 합니다. 4일 인천 남구청에 따르면 지역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A(51)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와 빌라 등을 서울과 인천에 15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파트와 빌라 등 15채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중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집부자인 그들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의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수많은 집을 소유하는 방법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계약금을 걸고 공매 건물을 인수하고 이를 전세를 줘서 다른 아파트와 빌라 등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수백채의 건물을 가진 자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은행 빚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자금의 여유가 없는 이는 경제난에 처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자살한 A씨의 부채 규모와 부동산 거래 정황 등을 밝히는데 수사를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과도한 은행 빚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힌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로 다가옵니다. 이런 극단적인 부 늘리기에 뛰어드는 이들은 이들만은 아닙니다.

 

 

이미 부동산이 가장 중요한 부의 상징이 된 현실 속에서 정부의 정책에 흔들리는 서민들의 부자 되기는 이렇게 불안하고 무모하게 다가옵니다. 기본적으로 불안한 사회 속에서 불안정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이런 무모함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하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

지난 29일에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빌라에서 69세 최모씨가 방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위에 쓰여진 글이 담긴 봉투에는 10만 원 가량의 돈이 들어있었고, 옆에는 본인의 장례비와 밀린 전기세 등의 용도로 사용하라며 100여만원의 현금이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그들의 마지막이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현실과 미래에 대해 그들의 선택은 극단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을 위해 고민한 흔적만 역력했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들을 세상은 지지해주지 않았습니다. 큰돈을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는 꿈조차 사치였고, 돈 없는 그들이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세모녀는 집주인을 걱정하고 월세와 장례비를 두고 숨진 이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은 슬프게 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들을 구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한예종을 졸업하고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던 故 최고은의 죽음은 우리를 경악스럽게 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지 보여준 그녀의 죽음에도 우리는 사회를 성토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던 그녀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받친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잔인한 가난이 전부였습니다.

 

쌀이 없어 옆집에 쌀을 구걸하고 김치라도 나눠달라는 그녀의 마지막 부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예술가의 삶이 힘겹고 어려운 삶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먹고는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故 최고은은 우리 사회 수많은 가난한 예술인들의 위기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목이었습니다.

 

가난한 예술가와 서민들에게 대한민국은 버티며 살아가기 어려운 국가입니다. 정부는 서민들의 복지에 앞장서야 하지만 이명박 시절부터 복지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복지는 요원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006년부터 '긴급복지 지원사업'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이들도 많고 정작 신청을 해도 다양한 이유로 거절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 국가의 서민을 위한 그 어떤 대책도 존재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재벌들의 수익은 급격하게 늘어가지만, 서민들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할 정도의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이는 이들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들을 하나씩 품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기만 합니다. 가계부채는 점점 커지고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 주변의 서러운 죽음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공산주의라 외치는 이 한심하고 황당한 현실 속에서는 결코 이 죽음의 행렬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고 아픈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서민들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들을 강구하고, 지금이라도 복지 정책을 대폭 확대(최소한 과거의 수준이라도) 하지 않는 한 이 지독한 죽음의 굴레에서 서민들이 벗어날 길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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