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23. 10:17

김건모와 최시중, 그들의 재도전은 무죄인가?

요즘 최고 논란은 김건모의 재도전입니다. 대중들이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높은 관심의 정점에 김건모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나는 가수다>라는 방송을 알아야 하고 그 안에 벌어진 기이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들과 최시중의 모습은 연결되며 씁쓸함을 더하게 됩니다.

원칙을 무시한 사회, 편법을 원칙이라 이야기하는 사회




자타공인 최고의 가수 일곱 명을 한 무대에 모아 그들의 기량을 500명의 청중들에게 들려주고 이를 즉석에서 투표해 탈락자를 가려낸다는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는 태생부터가 논란이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스스로도 모순을 알면서도 모순이라 이야기하지 않고 말 바꾸기에는 집착하는 김영희 피디로 인해 본질이 왜곡되어 알량한 상품만이 남아버렸습니다.


서바이벌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서바이벌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모순.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가수들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500명의 청중들이라며 자신하던 그는 그들이 내린 평가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뒤집어 버리는 행동을 저지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선택을 당사자인 김건모에게 건네며 자신들은 가수들에게 선택을 맡겼기에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핑계'를 부른 김건모로서는 핑계만이 지배하는 김영희 피디를 바라보며 노래의 주인은 바로 당신이요를 외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간부가 되어버린 '쌀집 아저씨'는 자신을 위대한 예능의 신 정도로 스스로 추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논란을 무마시킨다며 행한 인터뷰에서 물러날 생각도 있지만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나는 가수다>를 유지시킬 수 없기에 물러날 수 없다 라 강변합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전형적인 발언은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기만 합니다. 최시중이 언론 파괴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대한민국의 언론을 70년대로 후퇴시키고도 억울하다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것과 너무 닮은 김영희의 변명은 경악 수준입니다.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암묵적인 동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원칙을 파괴하며 주인공이어야 할 가수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이런 상황을 부추긴 것은 자신들이 아닌 시청자들이라면 책임 전가하기에 급급합니다.

강직한 언론인으로 독재에 맞서 싸워 투옥까지 된 자신을 언론 파괴의 주범으로 모는 현실이 가혹하다며 눈물로 호소하던 최시중의 모습을 보는 듯한 섬뜩함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봐야 한다는 것은 지독한 일입니다. 철저하게 권력에 기생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헌신했던 최시중이 언론인으로서 평생을 흔들림 없이 살아온 이들을 욕 먹이면서도 당당함을 보인 것과 김영희의 파렴치한 자가당착은 닮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편법들로 조중동에게 종편이라는 선물을 주고 그들이 안착할 수 있도록 온갖 탈법과 편법들을 행사하기 위해 방통위원장을 한 번 더 하겠다는 최시중과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김영희와 MBC의 모습을 보는 듯해 씁쓸하기만 합니다.

스스로 '서바이벌'을 강조하며 예능에 갈 곳 없는 가수들을 불러 모아 경쟁을 유도하더니 그 모든 탓을 시청자들의 '탈락자' 요구로 말을 바꾸는 김영희 피디의 모습은 과연 그가 수십 년간 스타 예능 피디로 사랑받았던 인물인지를 의심하게 합니다.

'탈락자'는 시청자들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제도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인 <나는 가수다>에서 마치 이런 제도를 시청자들이 강요하고 이를 따라야 하는 자신의 고뇌에 찬 존재인양 괴로워하는 모습은 최시중의 '악어의 눈물'을 생각하게 합니다.

원칙을 무시하면서 합당함을 주장하는 것만큼 모순은 없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언론을 권력의 시녀로 둔갑시키고 수구언론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현 정권과 최시중은 자신들의 그런 탐욕을 막아서려는 야당들과 국민들에게 신경질을 내기만 합니다.

원칙을 무시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원칙들이 무너지고 편법들이 난무하게 된다면 혼란이 심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 혼란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신뢰가 무너지고 불신이 지배하는 탐욕의 사회만이 남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